토정비결과 이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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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Date23-08-25 00:00 Hit69 Comment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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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 土亭秘訣》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지함(1517~1587)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괴짜다. ‘이지함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질문에 율곡 이이가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이지함의 기인적 풍모를 대변해 준다. 이지함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로 그의 호를 따서 흔히 토정(土亭)이라 불린다. 그는 포천 현감과 아산 현감을 지내면서 궁핍한 백성들의 생활을 보고 항상 가슴 아프게 여겨 선정을 베풀었으며, 구제 대책을 세워 왕에게 상소하여 반영시키기도 하였다. 평생을 흙담 움막집에서 지낸 그의 청렴한 생활로 미루어 보면 《토정비결》의 저작 동기와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에게서 글을 배우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 되었다. 이이(李珥)•조헌(趙憲) •박순(朴淳)등과 교유했으며, 당대의 일사(逸士) 조식(曺植)은 마포로 그를 찾아와 그를 도연명(陶淵明)에 비유하기도 했다. 서경덕의 영향을 받아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 해박하였다. 그의 사회경제사상은 포천 현감을 사직하는 상소문 등에 피력되어 있는데,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1573년 훌륭한 행실로 6품직을 제수받아 포천 현감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직하였다. 1578년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제 정책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주경궁리(主敬窮理)와 실천이행(實踐履行)을 독실하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수양(修養)에 있어서는 과욕(寡慾)을 강조하여 과욕하다가 무욕(無慾)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심(心)이 허령(虛靈)해져 중화(中和)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의학•복서(卜筮)•천문•지리•음양•술서 등에 능통했으며, 괴상한 행동, 기지(奇智), 예언, 술수에 대한 많은 일화가 전해온다. 한강변에 높이 수십 척의 흙담 움막집을 지어 밤에는 그 안에서 살고 낮에는 토실 위로 올라가 살아 토정이라는 호가 붙게 되었으며 사후 100년이 지나서 17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찾아와 1년의 신수를 보아 달라고 요청한 것에서 지어졌다. 혹자는 이 책이 이지함과는 관계없이 그의 이름을 가탁한 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지함은 주자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는 사상적 개방성을 보였으며, 이러한 까닭으로 조선시대 도가적 행적을 보인 인물들을 기록한 《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소개되어 있다.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토정비결은 일종의 철학이며 종교이다. 추종자를 거느린 세상의 모든 철학과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조직화, 신격화, 체계화 과정을 밟으며 결국 스스로 신화가 된다.
토정 ‘이지함’을 kabbu가 현실로 불러내 인터뷰했다
Kabbu: 토정비결로 유명하신 이지함 선생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생님께 몇 가지 질문을 여쭙고자 합니다. 먼저, 《토정비결》이 정말 선생님의 작품이 맞습니까? 도저히 인간이 만든 저작이라고 믿기지가 않습니다. 선생님 증손자의 아들이 쓴 《토정유고》에도 《토정비결》에 대한 언급이 없더군요. 음, 단순히 선생님의 이름만을 빌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지함: 백운학 같은 점쟁이들에게 물어 보세요. 그들에게 《토정비결》은 마치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과 같은 것입니다. 종교라는 말 자체가 ‘무조건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믿음’을 신봉하는 것이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Kabbu: 《토정비결》이 종교라고요?
이지함: 소수가 믿으면 미친 것이고 다수가 믿으면 종교라는 말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요. 《토정비결》은 기독교와 불교의 신자 수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허니 이것이 종교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종교겠습니까?
Kabbu: 아. 《토정비결》은 단순히 신수를 판단하는 술서(術書)가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제가 보기에 이 책은 가난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 풍자 목적으로 쓰여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보다 진정성을 가지고 이 책을 쓰셨습니까?
이지함: 진실을 말하는 일은 진실을 감추는 것만큼 힘이 듭니다. kabbu 선생은 토정비결의 원전격인 주역(周易)을 믿습니까? 제 입장에서는 “토정비결은 토정비결일 뿐 과학이 아니다.”라고 답변드릴 수 있겠네요.
Kabbu: 역시 토정 선생님다운 답변이십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토정비결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한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토정교’가 창조자 혹은 정복자와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않고 희망과 행운을 강조한 것 때문일까요?
이지함: 사실... 저는 조금 억울합니다. 책 한 권도 남기지 않은 공자, 예수, 부처, 소크라테스 등에 비해 저는 터무니없는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한 것은 그들이 아니고 바로 저입니다. 이 세상을 한 번 보십쇼. 토정비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운세’에 목매는 사람들이 ‘기도’에 목매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고, ‘돈’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Kabbu: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좀 어안이 벙벙합니다.
이지함: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 부처의 수제자인 마하가섭,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인 플라톤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제자로 만나지 못한 것이 여한으로 남습니다. 조직화와 신격화, 그리고 체계화에 있어서 우주대표 선수급인 그들에 비해 사실 ‘백운학’은 게임이 안돼요. 만일 그보다 더 훌륭한 제자를 만났다면 아마도 세상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뭐, 아직 4백 년이 흘렀을 뿐이니 다음 천 년을 기다려봐야죠.
Kabbu: 누가 원조‘백운학’인가요? 90년대 중반 정보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29명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며 활동했다고 하는데…
이지함: 그것은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위에서 했던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사실 그들은 저보다 더 심한 폭탄들이었습니다. 변변한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했던 공자, 현실세계에서 로마 세력을 쓰러뜨리고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해방시켜 주는 메시아다운 메시아가 되지 못했던 예수, 생전에 자신의 조국은 물론 부족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능한 부처, 마지막으로 쉰 살이 되어서야 독신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던, 킹카와는 거리가 먼 소크라테스가 ‘폭탄’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폭탄이겠습니까?
Kabbu: 구체적으로 그게 무슨 뜻이지요?
이지함: 철학이란 쉬운 말로 ‘현실을 벗어나 비상하려는 행위’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주지육림의 하렘에서 여자들을 거느리고 매일 밤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성공한 부자가 철학에 인생을 바칠까요? 그들은 오히려 철학하는 자들을 배척하지요. 즉 철학은 현실의 주도권을 쥔 ‘킹카’들에 의해 배제되거나 배척된 ‘폭탄’들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Kabbu: 매우 놀라운 주장입니다.
이지함: 혼다 토오루는 『바람난 철학사』에서 철학의 역사는 현실을 벗어나 비상하려는 시도의 역사이며 진정한 철학자는 모두 ‘폭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철학이란 이성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고뇌, 혹은 현실에서 폭탄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괴로움의 수수께끼를 밝히려는 사색활동에 불과합니다. 폭탄 철학자들은 뇌의 엑스터시(ecstasy)를 추구하며 머릿속으로나 구원을 얻으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아주 살기 힘든 지옥으로 보기 때문에 딴 세상에 천국이나 극락이라고 하는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놓고 현실에서 벗어나 승천하라고 부추기는 것입니다.
Kabbu: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두 인기 없는 폭탄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지함: 유교, 기독교, 불교가 국교로 인정을 받은 것은 창시자들이 죽은 후 수백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당대에는 인기 없는, 아니 인기를 거부한 나 같은 폭탄들이 인류 창조의 근원이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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