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만 가족사 그림(순천대 박물관) - 파랑새가 된 작가의 할아버지는 왜 처형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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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만 가족사 그림(순천대 박물관) - 파랑새가 된 작가의 할아버지는 왜 처형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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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고리들TV Date20-10-12 00:00 Hit3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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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에 들었던 일랑 사부님의 조언과 30년의 실천
-고리들 2018년 인터뷰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1.화가가 된 계기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전교 미술대회에서 특선을 받았지요. 소풍에 갔던 추억을 그렸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그때 제 그림의 특성은 아이들의 다양한 동작들과 엿장수입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제가 기억나지 않는 어린 나이에 벽에 닭을 그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초등 5학년 때에는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의 초상화 스케치를 했는데, 그때의 수준을 지금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림을 배우지 않았던 때에도 얼굴을 닮게 그렸는데,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힘이 듭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계속 미술 선생님들은 제게 미술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삼촌도 화가이니 미대를 포기하려 했지만 결국 미대를 갔지요. ‘DNA+팔자’라고 생각됩니다.

2.선생님과의 인연과 에피소드
-중고등학교 어떤 교과서에서 ‘무중력’이란 제목의 타조 수묵화를 본 기억이 있어요. 그 달리는 타조 수묵화가 아마 사부님과 만난 최초의 흔적일 겁니다. 지금 다시 보니 달리도록 진화한 새는 별처럼 빛나고 깃털처럼 가벼운 영혼이 무거운 현실과 둔한 몸 안에 수감되어 있다는 울분을 가장 아름답게 토해내는 몸부림으로 느껴집니다. 무섭게 달리는 거대한 타조는 중력과 싸우고 있는데 사부님의 고민과 열정을 먼저 만난 것이죠.

“날 수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래 달리자!”

-서울대 동양화과에 친척선배가 있어요. 그 삼촌을 따라 1989년 호암갤러리에 가서 원형상이 주제인 사부님의 그림과 사진을 처음 보았죠. 큰 벽화 크기의 원색적 구성도 좋았지만 간단한 선들이 힘차게 지나간 현대적 추상화 병풍이 가장 좋았어요. 당시에는 삼촌에게 동양화를 배우고 박성태 선생님께 소묘를 배우며 입시준비를 하고 있던 때입니다. 1990년 말부터 사부님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윤봉길 의사 의거 60주년 기념벽화 제작에 보조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입니다. 이후 랑우회의 일원이 되어 사부님과 주변의 선배님들께 강의장과 실기실에서 들을 수 없는 귀한 얘기들을 많이 듣게 되었죠. 화가 날수록 더 정신을 차리고 화를 그칠 순간을 가늠해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은 평생 기억해야 할 충고입니다. 벽화를 같이 그리던 이종민 선배는 산정 서세옥 교수님의 예술가가 지녀야 할 묘심 3가지를 들려주었죠. 고양이 묘인데, 뭐든 건드리는 호기심, 혼자서도 잘 지내는 독립심, 꼬리를 흔들 주인을 두지 않는다는 자존심입니다. 묘심은 지금까지 세상 사는 지혜로 결코 권장되지 않았지만 점점 실업자가 많아지는 요즘 난 모든 사람들에게 묘심을 권하는 강사가 되었습니다.

-일랑 사부님은 아구찜이 놓인 어느 식당 술자리에서 나이 50세가 되기 전에는 절대 돈을 벌 생각하지 말고 공부와 예술을 하라고 말씀 하셨죠. 30년의 내공이면 50세 이후에는 돈을 멀리 해도 따라올 것이라 하시며 운보 김기창 선생님이 돈을 강아지에 비유하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20세의 멋진 차를 갖고 싶은 혈기 왕성한 청년에게 그저 30년은 내공을 쌓으면서 열심히 살라는 얘기는 흔히 듣기 어렵고 그냥 끄덕이며 듣기에도 힘든 충고였죠. 지금은 저도 학생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게 되었지만 20세에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럼 결혼생활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났지요. 결국 은사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어찌어찌 살다보니 1990년부터 스승님들의 말을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일랑 사부님의 그 조언을 따르는 길은 평탄한 길일 수는 없었죠. 그렇지만 30년 내공을 쌓으면 이후 돈이든 길이든 명작이든 결과가 보일 거라던 일랑 사부님의 조언 덕분에 아직도 전 고양이의 호기심으로 30년 내공을 마저 쌓는 중입니다. 제가 1970년생이니 이제 1년 반이 남았죠.

3.창작활동의 기쁨과 고민
-지금도 전 재료비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강사료와 대출을 받은 돈으로 캔버스를 사는 형편이지만, 일랑 사부님이 김선두 선생님께 해주셨던 말씀은 재료비가 부족하거나 여건이 나빠져서 독서로 시간을 보내거나 강의와 노동을 하거나 집필을 하는 내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화가는 붓을 놓았을 때 진짜 그림을 그리는 중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말씀이죠. 제가 붓을 잡을 수 없는 나날들의 고민과 공부와 노동이 진짜 그림을 만들어가는 시간이라는 말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림이 주업이 될 수는 없는 지금까지도 저를 많이 위로합니다. 때로는 술을 마십니다. 특히 노동 알바 이후에는 100%죠.

“늙을 수는 있지만 낡지는 마라.”

저 말씀은 최근 음주량이 늘고 있는 제가 더욱 반성할 말씀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정신과 영혼을 잘 닦고 더 맑고 투명하게 유지하고 더 새로워지라는 말씀은 예술가로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부님의 힘차고 멋진 그림들보다 저를 더 정신 바짝 차리게 하는 말씀에 더욱 감사하게 되는 술 생각나는 장마철이지만 절주하겠습니다. 일랑 사부님 감사합니다.

4.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고 한민족을 문화선진국으로 부흥시키는 일을 문화예술운동을 기초로 하여 이루고 싶습니다. 일단은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미술교육과 미술치료를 제공하는 전국단위의 자원봉사자 단체를 정부와 함께 조직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 아이디어를 채택하여서 절차를 진행 중이며 모레 7월 11일 KTV 인터뷰도 합니다. 제가 2004년부터 아이들 미술 가르치는 봉사를 해오다보니, 어떤 기업체에서 미술교육 봉사공간을 후원했어요. 그 공간은 ‘창조화력발전소’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4년 전에 60만원을 써서 상표등록을 한 이름입니다. 영국은 은퇴한 간호사 봉사단체에서 맞벌이 부부들의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합니다. 유럽은 공공 문예체 교육 시스템이 좋아서 월 3만원에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지요. 한국은 여유 있는 집 애들만 문예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특히 서민층과 빈민층 아이들의 문예체 교육을 돕지 않는다면 4차 산업혁명기에 매우 어려워지게 됩니다. 심리학자 ‘아이젠슈타트’는 창조적 혁신가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나온다고 했지요. ‘존 마에다’는 차세대 ‘스티브 잡스’가 예술 분야에서 나올 거라고 했고요. 교육이 돈으로 거래되는 일은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특히 문예체 교육의 공공적 접근성에 국가와 민족의 존망이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에 나온 신간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이 곧 4쇄에 들어갑니다. 광고도 없이 입소문으로 잘 팔리고 있지요. 지금 책을 2권 더 쓰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기 한국의 문화예술 보육교육 정치경제 등등 행복설계 전략에 대한 책을 쓸 것이고, 저와 제 주변 화가들을 인터뷰 하고 대표작을 소개하는 에세이집 “화가의 인문학” 책을 쓸 생각입니다. 이 책에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하고 사부님과 다른 화가들과 저의 철학적 고민을 많이 다룰 생각입니다. “화가의 인문학” 명칭은 약 2년 전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했습니다. 역시 60만원 들었죠. 그 이름으로 시리즈물을 내고 싶은데, 인공지능을 대비하는 책을 먼저 쓰고 싶어서 상표등록만 해두고 집필을 미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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