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기악합주선집 14 취타 ㅡ 빅타 조선악단(심상건, 정해시, 김덕준, 한성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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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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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기악합주선집 14 취타 ㅡ 빅타 조선악단(심상건, 정해시, 김덕준, 한성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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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옛날의 한국 Date20-05-25 00:00 Hit91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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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건(沈相健, 1889-1965)
충청남도 서산 출신. 가야금 이외에 병창으로도 명성을 떨쳤고, 양금과 거문고 풍류 및 해금도 능하였다. 흔히 아버지 심창래(沈昌來)에게 음악을 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본인이 말한 바에 의하면 열세살부터 음악을 하였는데 제대로 배운 것은 양금 풍류밖에 없고, 그밖에는 모두 스스로 터득하였다고 한다.
특히, 가야금산조의 조율법과 가락은 모두 독자적으로 창안한 것이다. 그의 가야금 조율법은 제1현이 일반적인 조율법보다 완전4도 낮고, 제2현에서 제12현까지는 일반적인 조율법의 제1현에서 제11현까지와 같다. 그는 산조를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가락으로 즉흥연주를 하는 유일한 명인이었다.
저음역에서 시작하여 차츰 고음역으로 고조되는 형식을 즐겨 사용하고, 평조 및 경조의 우람하고 화평한 가락으로 산조에 일대 변풍을 일으켰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산조의 본청(本淸), 즉 주음을 종전의 ‘징’(제7현)에서 ‘당’(제5현)으로 완전4도 낮게 내려서 연주하였다.
광복 전 일본에서 6회의 레코드취입을 하였고, 1948년 조택원(趙澤元)무용단과 함께 3년간 미국공연을 하였으며, 1960년 국악진흥회로부터 국악공로상을 받고, 1962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다. 한때 국립국악원 국악사도 지냈다.

정해시(鄭海時, 1???-????)
대금 연주가이자 젓대[大笒] 및 퉁소명인이다.
일제강점기 그가 취입한 "봉장취"(鳳長醉)·"새타령"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하고, 김덕진(해금)·김매홍(탐부린)·김덕준(해금)·이소향(가야금) 등과 함께 취입한 "가난타령"·"고당상"(高堂上)·"고산염불"(高山念佛)을 포함한 10여 곡의 노래는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오태석·정남희·조앵무 등과 함께 취입한 "까투리타령"·남도잡가(南道雜歌) "농부가"·"둥게타령"·"매화타령"(梅花打令)·"문경새재"·"성주푸리"는 폴리돌음반에 전한다. 1935~1941년 김덕진(金德鎭)·조금옥(趙錦玉)과 함께 경기가요(京畿歌謠)·"봉작취"(鳳雀吹)·산조(散調)·속곡(俗曲)·시조(時調)·퉁소독주(洞簫獨奏)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김덕준(金德俊, 1???-????)
해금 연주가이다. 1868년(고종 5) 12월 신정왕후(1808~1890)의 회갑을 경축하는 내진찬(內進饌) 때, 그리고 신정왕후의 칠순 및 1877년(고종 14) 12월 철인왕후(1837~1878)의 망오순(41세)을 경축하는 잔치 때 해금차비(奚琴差備)였다. 1873년(고종 10) 4월 신정왕후의 왕대비(王大妃) 책봉(册封) 40년을 경축하는 진작례(進爵禮) 때 갈고차비(羯鼓差備)였다. 그리고 신정왕후의 팔순 및 1887년(고종 24) 정월 효명세자(1809~1830) 즉 익종(翼宗)에게 관례(冠禮)를 올린 60주기를 경축하는 잔치 때, 그리고 1892년(고종 29) 고종의 망오순(41세)과 등극 30년을 경축하는 잔치 때 장구차비(杖鼓差備)였다.
일제강점기 해금으로 취입한 속요(俗謠)는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1936년 장구반주로 조선무용곡 "승무곡"(僧舞曲) 및 1937년 서도가요(西道歌謠) "수심가"(愁心歌)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한성준(韓成俊, 1875-1941)
한성준은 충남 홍성군 갈산면에서 태어나 19세기 후반-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고이자 명무(名舞)이다. '성준'은 예명으로, 그의 호적에는 '문필(文必)', 묘비에는 '성진(成鎭)', 『홍성군지』에는 '춘석(春錫)'으로 각각 기재되어 있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모친이 무업에 종사했으며, 판소리 명창 임방울(林芳蔚, 1904-1961) 집안과 사돈지간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 한영숙(韓英淑, 1920-1989)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춤과 북에 능했던 백운채(白雲彩)가 그의 외조부이자 첫 스승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광(朝光)』 1937년 4월호에 실린 기사 「고수 오십년」의 "조부(祖父)되시는 자운채씨(自雲採氏)라는 이한테 춤추는 것과 북치는 것을 뵈기 시작했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이름이나 가족 관계가 분명치 않다.
7세(1881) 무렵 외조부(혹은 조부)에게 춤과 북을 배우기 시작했다. 14세부터 4년간 홍성의 서학조(徐學祖)를 찾아가 줄타기와 땅재주를 익혔으며, 수덕산의 박순조(朴順祚) 문하에서 20세가 넘을 때까지 춤과 장단을 학습했다. 서울에서 활동할 당시, 명고이자 춤과 줄타기의 명인으로 유명했던 강경수(姜敬秀)에게 북을 전수받았다. 한성준의 고법은 강대홍(姜大弘, 가야금산조의 명인 강태홍(姜太弘, 1894-1957)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 김재선(金在先, 1900-?), 김득수(金得洙, 1917-1990) 등에게 전수되었다. 한편 한성준은 근대 전통춤 교육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해 한영숙, 강선영(姜善泳, 1925- ), 김천홍(金千興, 1909-2007) 등의 전통무용가를 제자로 길렀다.
어린 시절 줄타기 등을 배워 충남 홍성을 비롯해 서산, 태안 일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연회와 굿판에 참여했다. 상경 후 이름이 점차 알려지면서, 김창환(金昌煥, 1855-1937), 송만갑(宋萬甲, 1865-1939), 이동백(李東伯, 1866-1949), 정정렬(丁貞烈, 1876-1938) 등 당대 쟁쟁한 국창들의 고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가 판소리 공연에서 북 반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스승 강경수가 타계하면서 강경수가 이전에 맡고 있었던 음반, 라디오, 공연 출연자 섭외를 한성준이 거의 총괄했으며, 지방에 은거 중이던 명창 유공렬(柳公烈, 1859-?)을 서울로 불러들여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국악인들이 설립한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임원직도 맡았다.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 정식으로 소개한 고수는 「고수 한성준(鼓手 韓成俊)」 조의 한성준이 유일하다. 그는 여기서 "고수로서의 천재를 발휘하여 창극계의 일대 조역의 지위를 점령"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이영민(李榮珉, 1881-1962)도 『벽소시고(碧笑詩稿)』 중 "가사엔 법도가 있으니(歌詞有法度), 장단이 마땅한 기준이 된다네(長短爲常綱). 그대는 하늘이 낸 재주꾼이기에(君是天才子) 모두들 '소리북의 왕'이라 일컫는다네(皆稱大鼓王)"라는 시를 통해 한성준을 '소리북의 왕'이라 칭한 바 있다. 당대 최고의 명고라는 위상에 걸맞게,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 등 최고 명창들의 판소리 음반 및 『폴리돌 심청전 전집』, 『폴리돌 화용도 전집』, 『빅타 춘향가 전집』 등 창극 유성기 음반의 대다수가 그의 북장단에 맞추어 녹음되었다. 산조와 봉장취, 시나위 등의 녹음에서는 장구 반주를 맡았으며, 피리 독주곡(Columbia 40393-B 피리獨奏 神臥爲 韓成俊) 음반도 남겼다.
한성준은 무용계에서 '한국 근대춤의 아버지'로 통하기도 한다. 대원군과 고종 앞에서 춤을 추어 참봉 벼슬을 제수받았으며, 흩어져 있던 전통 무용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해 승무(僧舞), 태평무(太平舞), 학무(鶴舞) 등을 무대화시키는 등 독보적인 활동을 했다. 1938년 5월 2일에 개최된 향토연예대회에서는 승무, 단가무, 검무, 한량무, 신선음악, 상좌무, 살풀이춤, 사자무, 태평무, 학무, 급제무, 사호락무 등을, 같은 해 6월 23일의 고전무용대회에서는 바라무(승무), 한량무, 검무, 단가무, 신선악, 상좌무, 살풀이춤, 사자무, 학무, 태평무, 급제무, 농악, 소경춤, 군노사령무 등을 공연했다.
1939년 2-3월 사이에 이루어진 남선순업공연(南鮮巡業公演)에서는 검무, 한량무, 신선음악, 살풀이춤, 급제무, 태평무, 신장무, 동자무, 노승무, 나도무(羅渡舞), 농악무, 학무, 단가무, 애국행진곡, 군노사령무 등을, 1940년 2월 27일에 열린 도동기념공연에서는 애국행진곡, 동자무, 검무, 단가무, 한량무, 고무(鼓舞), 살풀이춤, 태평무, 사정무, 아리랑무, 도라지타령무, 바라무, 학무, 신선무, 급제무, 농악무 등을 무대에 올렸다. 56세에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고, 60세에 무용만을 전문으로 하는 조선무용연구소를 창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61세에 부민관(府民館)에서 '한성준무용공연회'를 개최한 후 일본 순회공연을 했고, 67세에 소설가 이태준, 화가 고희동과 함께 일본의 모던일본사가 제정한 조선예술상(무용 부문)을 수상했다. 그가 창안하거나 재구성한 춤들은 우리춤 중에서도 탁월하고 정통성 있는 춤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중 승무와 태평무는 각각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와 제92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심상건 [沈相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정해시 [鄭海時]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송방송)
[네이버 지식백과] 김덕준 [金德俊]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송방송)
[네이버 지식백과] 한성준 [韓成俊] (한국전통연희사전, 2014. 12. 15., 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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